예천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범일국사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 온
두운선사가 소백산맥의 한 자락인 용문산에 두운암을 지은 것이 모태라고 하네요
예천 용문사는 고려 태조가 남쪽을 정벌하기 위해 용문산을 지나다가 두운선사를 만났는데
두운선사의 불심에 감화를 받아 통일 후 용문사에 재물을 내려 전각을 짓게 하고 공양미를
하사하면서 고려 왕실의 후원은 계속되었다네요
예천 용문사는 고려 의종과 명종시기에 사세가 크게 확장되어 9층 청석탑를 비롯한
윤장대와 대장전을 건립하고 명종 태자의 태를 안치하면서 사찰 이름을 한때
창기사(昌期寺)라 부르기도 했다네요
예천 용문사는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과 원당을 관리하는 사찰로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태실과 비, 정조 맏아들인 문효세자의 태실이 주변에 있으며 선조의 후궁이자
인조의 할머니인 인빈 김씨의 원당 사찰로 1457년 세조가 잡역을 면제하는 교지가
전해지고 있어 당시 사찰의 위상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예천 용문사 전경


'소백산용문사'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


도로를 따라 경내로~~


부도전과 사천왕문인 회전문(迴轉門)


회전문에 봉안되어 있는 사천왕


'소백산용문사' 현판이 걸려 있는 '해운루(海雲樓)'


용문사 자운루(경북 문화재자료)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회담장과 승속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만들던 호국장소로 고려 의종 20년(1166), 지엄대사가 건립하였다네요


요사채인 보경당(普慶堂)과 '영남제일강원'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범종각과 보광명전


예천 용문사 대장전(大藏殿/국보 제328호)은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한 전각으로
고려 명종 3년(1173)에 국가 위기를 불심으로 극복하기 위해 조응대선사가 건립하였는데
고려시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건립자, 건립시기, 건립목적 등을 알 수 있다네요


예천 용문사 윤장대(국보 제328호/높이 4.2m, 둘레 3.5m)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책장의
일종이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있다네요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989-1호)은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관음 · 대세지보살을 협시불인 삼존상으로 17세기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네요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가로 2.15m, 세로 2.61m/보물 제989-2호)은
조선시대 1684년에 조성된 것으로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 등을
상 · 중 · 하 세 열로 배치되었는데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가운데와 윗줄에
여덟보살을 배치한 것은 조선후기 불화에서 유행한 형식이라고 하네요






진영당과 명부전
천불전과 관음전


용왕각과 만월당/산신각


예천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445호)은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 모임인
영산회를 형상화한 것으로 조선 숙종 31년(1705)에 조성되었다네요

예천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445호/사진출처 : 국가유산청)


예천 용문사 성보박물관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경북 유형무화유산)와 용문사 역사에 대한 전시내용


예천 용문사 천불도(국가지정 보물)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국가지정 보물/사진출처 : 국가유산청)


예천 용문사 팔상탱(국가지정 보물/사진출처 : 국가유산청)
용문사 뒷편 산 기슭에 있는 문효세자태실비와 경내를 돌아보면서 시간을 정리하네요






~촬영 : 2026년 1월 중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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