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진해구에 있는 웅천읍성(熊川邑城)을 찾아가 보았네요
웅천읍성은 1407년 내이포를 개항되여 일본과 무역이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의 불법
거주자가 늘어나자 고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종 16년(1434)에 축조하였다고 하네요
웅천읍성은 세종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져 정사각형의 평면이 현재와 같이 직사각형으로
변했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주둔하던 웅천왜성에 딸린 성(자성, 子城)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오랜 기간 남해안을 방어하는 주요거점이었으나 고종 32년(1895)에
읍성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하네요
웅천읍성 성곽에서~~
창원 웅천읍성(경남 기념물 제15호)은 전체 둘레 936m로 현재 남아 있는 길이는
약 500m 이며 성벽의 폭은 4.5m, 높이는 4.4m라고 하네요
웅천읍성 동문루와 웅천역사 둘레길 안내도
웅천읍성 동문루(견룡문)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문루로 화려한 팔작지붕을 올렸는데
문 아래쪽에 출입 통로를 만들고 전투할 때에는 장수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다네요
웅천읍성에는 동문루인 견룡문, 서문인 수호문,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신문 등
4개의 대문이 있었다고 하네요
웅천읍성 동문루 앞에 있는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다시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것이라고 하네요
옹성과 성곽에서 바라 본 동문루
석환은 성 위에 마련헤 두었다가 적이 접근하면 던져서 사용하던 무기의 일종으로
성인의 주먹 크기부터 머리 크기만 한 것까지 당양한 크기가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동문루와 옹벽 사이 출입문을 따라 성 외곽으로 걸어가네요
웅천읍성 성벽은 땅과 수직이 되도록 쌓았으며 큰 돌 사이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었는데
읍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과 출신 고을의 이름이 새겨진 '명문석'이 있어 읍성을 지은 뒤
발생하는 문제 등을 관리했다네요
웅천읍성의 명문석은 모두 5개 확인되었는데 진주, 창녕, 청도, 합천 등 당시 웅천읍성을
쌓기 위해 경상도 전역 백성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네요
웅천읍성 수구(폭 25㎝, 높이 20㎝)는 성벽에 설치된 배수시설 중 하나로 성벽 밑이나
중간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성 바깥쪽으로 물이 흘러 나가도록 했다네요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감시하거나 성벽이나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웅천읍성에는 총 6개의 치성이 있었다고 하네요
해자는 적의 공격으로 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파 물을 채운 시설로
해자 주위에는 적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네요
조교는 해자를 건너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여닫게 형식의 다리라고 하네요
동북치성
웅천읍성 안 웅천고등학교에 있는 주기효 선생 공적비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정리하네요
~촬영 : 2024년 1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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