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초정(芳草亭)은 조선 선조 때 부호군을 지낸 이정복이 인조 3년(1625)에 임진왜란 당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연못에 몸을 던진 부인을 그리워하며 그녀가 몸을 던진 연못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한 후 이곳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 방초정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하네요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2층 누각으로 가운데 온돌방을 설치하고
사방으로 마루를 설치했는데 건물 중앙에 온돌방을 설치하는 구성은 호남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경상지역에서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하네요
방초정 2층 누각에는 방문했던 묵객들이 지은 시와 글을 옮겨 놓은 현판이 40여 개가
걸려있으며 한국전쟁 이전에는 여자들이 2층에 올라올 수 없었다고 하네요
방초정과 최씨담을 배경으로~~
김천 방초정(보물 제2047호)과 안내문구
방초정 2층 누각에서 바라 본 최씨담가에있는 배롱나무
이정복의 부인 최씨의 정절을 기려 1632년 조정에서 하사한 정려각
정려각 앞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가 쓰여진 비석은 최씨를 따라 함께 몸을 던진
여종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연안 이씨 후손들이 만들었지만 노비의 비석을 절부의
정려 앞에 감히 세울 수 없어 '최씨담'에 던졌으나 1975년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겼다네요
옮겼다네요
'풍기진씨열행비'는 이정복의 후손인 이기영의 처 풍기 진씨가 늑막염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숨지자 자신이 치료를 잘 해 주지 못한 탓으로 여겨 곡기를 끊고 남편의 시신 옆에서
24세의 젊은 나이에 굶어 죽은 것을 기리기 위해 1937년 세웠다고 하네요
'최씨담'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쫓기자 24세의 젊은 나이에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자 최씨를 따르던 여종 석이도 뒤를 이어 자결한 곳이라고 하네요
'최씨담'에는 물에 빠져 죽은 최씨와 석이를 추모하기 위해 두 개의 인공섬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연못에서 일반적으로 따르는 삼신사상(세 개의 섬)이나
천원지방(한 개의 섬)과 다른 것이 특이하다고 하네요
~촬영 : 2024년 10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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